누구에게나 쉽게 떠날 수 없는 곳이 있다. 태어나고 자란 집이 있고,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있으며, 오래전 기억이 골목과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집도 사람도 달라졌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예전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곳, 우리는 그런 곳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마리오 레비의 [이스탄불은 한 편의 동화였다]는 그런 고향과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60년에 걸쳐 이스탄불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유대인 가족 3대의 삶과 사랑을 따라간다.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며 가족을 이룬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이스탄불도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간다. 한 가족의 시간과 한 도시의 시간이 그렇게 나란히 흐르기 시작한다.
고향에 살면서도 낯선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소설 속 사람들에게 이스탄불은 하나뿐인 고향이다. 가족이 오래 살아왔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삶의 터전도 이곳이다. 하지만 고향에서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그곳에 온전히 속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다. 부모 세대가 지키고 싶어 하는 삶과 자녀 세대가 원하는 삶 사이에는 조금씩 거리가 생긴다. 사랑과 결혼, 가족과 미래를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 남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그렇다고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가운데 어느 한쪽이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 사람에게도 고향의 기억은 따라가고, 익숙한 곳에 남은 사람에게도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변해가는 쓸쓸함이 찾아온다.
마리오 레비는 이들의 삶을 거대한 역사 속에 세워두고 설명하기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바라본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는 동안에도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사랑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족 때문에 웃고 때로는 상처받는다. 오래된 영화와 노래, 음식과 사진, 거리와 가게도 그들의 기억 속에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작은 기억들이 한 가족의 긴 시간을 만들어간다.
사랑하는데도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
[이스탄불은 한 편의 동화였다]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사람의 삶과 만나고,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보였던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 이웃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 그 중심에는 늘 사랑과 가족이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누군가와 멀어져야 할 때도 있다. 한 세대가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가 다음 세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가족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한다. 멀리 떠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까지 두고 떠날 수는 없다.
마리오 레비는 그런 선택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누가 옳았는지를 말하기보다 그 선택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기쁨과 쓸쓸함이 특별한 경계 없이 나란히 흐른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평범한 저녁이 있는가 하면 이별과 죽음도 찾아온다. 이루어진 사랑 곁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고, 새로운 출발 뒤에는 두고 온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나간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된 사진 한 장, 한때 즐겨 듣던 노래, 어느 날 함께 먹었던 저녁과 걸었던 거리에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문득 돌아온다. 그 기억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이스탄불이 있다.
사람은 변하고, 도시도 함께 변한다
이 작품에서 이스탄불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헤어지고 나이를 먹는 동안 도시 역시 그들과 함께 살아 움직인다. 거리와 집, 카페와 가게, 영화와 음악, 음식과 같은 일상의 풍경에는 사람들의 시간이 스며든다. 어떤 장소에는 행복했던 날이 남고, 또 다른 장소에는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도시도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스탄불은 변한다. 익숙했던 풍경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도 달라진다.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거리와 어른이 되어 다시 걷는 거리가 같은 곳이면서도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소설 속 사람들에게 이스탄불은 하나의 얼굴만 가진 도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다. 멀리 떠난 사람에게는 그리운 고향이 되고, 그곳에 남은 사람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어느 순간 낯설어진 삶의 터전이 된다.
그러고 보면 작품 제목의 ‘동화’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이 소설의 동화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너무 오래 지나 현실보다 기억에 가까워진 삶의 이야기이다.
오래된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듯
마리오 레비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정리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에서 다른 사람의 삶으로 건너가고, 오래전 한 장면에서 또 다른 사람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는 일과 닮아 있다. 사진 속 한 사람을 바라보다 그 사람이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러다 그들이 함께 살았던 집과 걸었던 거리를 생각하고, 그곳에서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만난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이어지면서 어느새 한 가족의 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기억은 모든 순간을 똑같이 간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은 어느새 희미해지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당시에는 몰랐던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기도 한다.
[이스탄불은 한 편의 동화였다]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만이 아니다. 그 일이 지나간 뒤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남았는가도 중요하다. 마리오 레비는 그렇게 남은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인다. 그리고 한 가족의 이야기는 조금씩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기억으로 넓어진다.
어느새 나의 오래된 골목을 떠올리게 되는 소설
마리오 레비는 이스탄불 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저널리스트와 교사, 작가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이스탄불의 소수 공동체,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이스탄불은 한 편의 동화였다]는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분명 이스탄불의 한 유대인 가족에게서 출발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 때문에 힘들어했던 순간, 젊은 시절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던 마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지나온 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도 있고, 그때는 미처 소중한 줄 몰랐던 평범한 행복도 있다.
책을 읽으며 어느 순간 독자는 이스탄불의 골목을 걷다가 자신의 오래된 골목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일 수도 있다. 이제는 사라진 가게일 수도 있고, 오래전 친구와 걷던 길이나 가족이 함께 둘러앉았던 밥상일 수도 있다. 다시 찾아가면 그 장소는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과 시간까지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기억하고 이야기를 남긴다. [이스탄불은 한 편의 동화였다]의 사람들도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지나간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떠났다가 돌아오고, 때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그 사이 도시는 조금씩 달라지고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나간다.
그런데도 오래된 이스탄불 어딘가에는 그들의 웃음과 사랑, 이루지 못한 꿈과 평범했던 하루가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한 도시가 동화가 되는 순간은 바로 그때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이야기가 되는 순간 말이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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