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평화롭던 개성 부근의 산골마을 청하동에 어느 날 관군이 들이닥친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관군을 도적떼로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맞서 싸우자 관군은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백성을 지켜야 할 군사들이 오히려 백성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공을 부풀려 정치적 야욕을 가진 유자광에게 인정받고, 그 대가로 관직이라도 얻으려는 속셈이 있었다.
권오단 작가의 역사소설 [전우치]는 이렇게 한 산골마을을 덮친 비극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한 아이의 운명도 크게 바뀐다. 바로 전우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우치는 도술을 부리고 탐관오리를 골탕 먹이는 신비로운 인물에 가깝다. 오랜 세월 여러 이야기를 거치면서 현실에 존재했던 사람이라기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전설 속 도술가로 더 친숙해졌다. 그러나 전우치는 옛 문헌에 이름이 남아 있는 실재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 [전우치]는 이 역사 속 인물을 다시 조선의 현실로 불러낸다. 전우치에 관한 기록과 사료에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으며, 무엇을 보고 겪으면서 의적으로 변해갔는지를 한 사람의 일대기로 풀어낸다.
그렇게 소설 속 전우치는 처음부터 세상을 뒤흔드는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산골에서 나무를 하며 살아가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산을 내려와 세상을 만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우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이 뒤바뀐 아이
전우치가 태어난 15세기 후반의 조선은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조선 건국 이후 권력을 잡아온 훈구파에 맞서 신진사류가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성종 연간에는 김종직과 김굉필, 정여창 등이 활동하면서 사림파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기존 정치세력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펼치려 했던 사림파는 그러나 무오사화를 겪으며 큰 위기를 맞는다.
전우치의 가족도 이런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 전유선은 양반이었지만 관직에 나아가는 대신 무풍을 지키며 야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나라 도맥을 계승하고 연구하면서 그 맥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정치적 격변은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려던 전유선에게까지 밀려왔다. 그는 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 돌아왔을 때는 자신이 살던 마을과 집이 관군에 의해 이미 쑥대밭이 된 뒤였다. 가족의 운명도 그 과정에서 갈라진다. 쌍둥이로 태어난 전우치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자신이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심마니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산골에서 나무를 하는 초동으로 성장한 것이다.
어린 전우치에게 조정에서 벌어지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은 먼 세상의 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그의 마을을 무너뜨리고 가족을 흩어놓았으며, 한 아이의 삶까지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소설 [전우치]는 이처럼 커다란 역사의 변화를 한 가족과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역사는 조정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까지 흔들어놓는다는 사실을 전우치의 운명을 통해 보여준다.
산을 내려온 전우치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산골에서 자란 전우치는 어느 날 세상 구경이나 해볼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거나 힘없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산골을 벗어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전우치가 만난 세상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해적들의 약탈 앞에서 힘없이 당해야 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지켜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산속에서는 알지 못했던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전우치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전우치도 조금씩 달라진다. 세상과 떨어져 살아가던 산골 소년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자신이 가진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전우치는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의적으로 거듭난다. 이 변화가 소설 [전우치]의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흐름이다.
전우치는 처음부터 완성된 영웅이 아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부당한 일을 직접 보고, 힘없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찾아간다. 그래서 그의 활약 뒤에는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우치가 세상과 맞서기 시작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술을 부리는 기인에서 백성의 편에 선 의적으로
전우치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도술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로 옛 기록에서도 그는 도술에 능하고 시를 잘 지은 인물로 전해진다. 도가의 이단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이야기되었으며, 여러 문헌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하지만 권오단 작가는 전우치를 신기한 능력을 지닌 기인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작품 속 전우치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탐관오리의 횡포와 해적의 약탈이 있고, 정치적 욕심 때문에 희생되는 평범한 백성들이 있다. 전우치는 바로 그 현실을 직접 바라보면서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그 선택을 보여주는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 재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피와 땀에서 나오며, 백성이 부유해야 나라도 함께 부유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전우치의 말 속에 담겨 있다. 임금 역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기르기 위해 세워졌다는 생각도 드러난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면 전우치의 도술과 활약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가가 아니라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이다. 세상을 떠돌며 힘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된 전우치는 부당한 권력 앞에서 그들의 편에 서기 시작한다. 전설 속 기인의 모습에 백성을 생각하고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는 의적의 모습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 [전우치]를 읽는 재미는 도술과 활약이 아니라 전우치가 무엇을 보고 분노했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데 있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전설 속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모습도 조금씩 드러난다.
사료와 상상력이 만나 역사 속 전우치를 되살리다
[전우치]가 역사소설로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는 방식에 있다. 전우치는 완전히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다. 중종 때의 인물로 도술에 능하고 시를 잘 지었다고 전해지며, 조야집요, 대동야승, 어우야담 등 여러 문헌에도 그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알 수는 없다.
권오단 작가는 이러한 기록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전우치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구성한다. 전우치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왜 자신의 부모와 신분을 모른 채 성장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산을 내려와 세상을 떠돌게 되었으며, 무엇을 보고 의적으로 변해갔는지를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연결한다.
여기에 재기 넘치는 한문시가 더해지면서 도술과 기행으로만 알려졌던 전우치의 모습도 한층 풍성해진다. 독자는 전우치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살았던 조선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훈구파와 신진사류가 대립하고 사화가 사람들의 운명을 뒤흔드는 시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욕심이 평범한 백성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시대 한가운데에 전우치가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설명하는 대신 한 사람의 삶 속에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기록으로 남지 않은 부분에는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렇게 전설 속 전우치는 다시 역사 속 인물로 살아난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간 한 인간, 전우치를 만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우치는 오랜 세월 여러 이야기를 거치면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도술을 부리는 기인이기도 하고,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 [전우치]는 익숙한 전설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전우치가 어떤 시대에 태어났고, 그 시대가 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으며, 그가 왜 힘없는 백성들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를 한 사람의 성장 과정 속에서 보여준다.
소설 속 전우치는 자신의 부모와 신분도 모른 채 산골에서 자란다. 세상이 궁금해 산을 내려온 뒤에는 탐관오리와 해적들에게 시달리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마주한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전우치도 달라진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부조리를 보게 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산골 초동은 점차 의적 전우치로 성장한다.
이 이야기의 뒤에는 격랑의 조선이 있다. 훈구파와 신진사류의 대립과 사화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은 조정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 여파는 평범한 마을을 무너뜨리고 가족을 흩어놓으며 한 사람의 운명까지 바꾸어놓는다. 전우치 역시 그런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우치]에서 역사는 단순한 소설 속 배경이 아니다. 시대가 전우치의 운명을 바꾸고, 그 시대를 살아가며 보고 겪은 일들이 다시 전우치의 선택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의 삶과 역사가 서로 맞물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의적 전우치의 모습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권오단 작가의 [전우치]는 실재 인물에 관한 기록과 풍부한 사료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전우치의 일대기를 새롭게 그려낸 역사소설이다.
산골 초동으로 살아가던 소년이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만나고,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의적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도술가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전우치를 만나게 된다. 신기한 능력을 지닌 전설적인 인물이기 전에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온몸으로 겪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한 한 인간이다.
[전우치]는 그렇게 익숙한 전설을 격랑의 조선 속에 다시 세운다. 그리고 독자는 그곳에서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뿐 아니라,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진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선택해가는 한 사람의 전우치를 만나게 된다. © 산수야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