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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는 정말 권력에 눈먼 요부였을까


고려 경종의 왕후이자 목종의 어머니였던 천추태후. 어린 아들을 왕으로 키우고 천추궁에서 섭정하며 권력의 중심에 섰던 여인이다. 그러나 역사에 남은 그녀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김치양과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이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대량원군 순을 핍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만 놓고 본다면 천추태후는 사랑과 권력에 눈이 멀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여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서에 남은 몇 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모두 판단할 수 있을까. 신용우 작가의 역사소설 [천추태후]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천추태후에 관해 남아 있는 역사적 기록은 매우 짧다. 더구나 역사가 승자의 시선에서 기록되었다면, 권력에서 밀려난 천추태후의 삶과 생각은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고려사에 남은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설명되지 않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한쪽에는 천추태후가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고 대량원군 순을 핍박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왕위에서 물러난 목종과 천추태후가 함께 목 놓아 울며 법왕사로 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만약 천추태후가 목종을 밀어내고 자신의 다른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면, 모든 것을 잃은 목종과 함께 울며 궁을 떠난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 기록 사이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빈자리가 있다. 소설 [천추태후]는 그 빈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록에 남은 결과만 바라보지 않고 천추태후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그런 선택을 했고, 목종은 어째서 왕위에서 내려와야 했는지를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 속에서 다시 살펴본다. 역사서의 몇 줄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삶을 소설로 되살려보는 것이다.

왕후가 된 천추태후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소설 [천추태후]는 천추태후의 탄생과 성장, 혼례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한 여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왕실의 사람이 되고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가는지를 차례로 따라간다. 천추태후에게 왕후라는 자리는 단순히 높은 신분을 얻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원대한 뜻이 있었고, 작품은 그 뜻을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으려는 꿈과 연결한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뒤에는 어린 아들을 왕으로 키워야 했다. 왕실의 복잡한 관계와 정치적 이해가 얽힌 가운데 아들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였으며, 동시에 자신이 품은 뜻을 현실 정치에서 펼치고자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역사에 남은 천추태후라는 이름을 먼저 평가하기보다 그 이름 뒤에 있었던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간다. 탄생과 성장, 혼례와 아들 송, 김치양과 입궁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한 여인이 어떻게 왕실과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의 삶을 처음부터 따라가다 보면 역사서에 남은 결과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왕후였고 어머니였으며, 자신이 이루고 싶은 정치적 꿈을 품고 있었던 한 인간의 모습이다.

어린 아들을 왕으로 키우고 정치의 중심에 서다

천추태후의 삶에서 아들 목종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남편을 잃은 뒤 그녀는 어린 아들을 왕으로 키웠고, 목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천추궁에서 섭정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제 그녀는 왕의 곁에 머무는 왕후가 아니라 직접 정치에 관여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인물이 된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그녀가 마주해야 할 문제도 복잡해진다. 왕실에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왕위를 둘러싼 문제는 한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추태후와 목종, 김치양을 둘러싼 관계 역시 사랑이나 욕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와 맞물려간다.

소설 [천추태후]는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천추태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따라간다. 그녀가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천추태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고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힘이 필요했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일수록 다른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때 원대한 꿈을 품고 왕후가 되었던 여인은 점차 정치적 갈등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추태후와 목종의 운명을 뒤바꾸는 사건들이 시작된다.

서로 다른 두 기록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천추태후가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만 보면 그녀가 목종과 대립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목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 천추태후와 함께 목 놓아 울며 법왕사로 갔다는 기록을 함께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아진다.

두 사람은 정말 왕위를 두고 서로 대립했던 것일까. 아니면 역사서에 충분히 기록되지 않은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신용우 작가는 바로 이 간격에 역사소설의 상상력을 펼친다. 기록에 없는 내용을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대신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바탕으로 천추태후가 왜 지탄을 받으며 궁에서 쫓겨나야 했는지, 목종은 왜 왕위에서 내려와야 했는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를 다시 그 시대의 현재로 돌려놓는 것이다.

독자는 천추태후가 결국 권력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 순간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 선택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역사서에서는 몇 줄로 끝났던 사건이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 꿈과 좌절이 얽힌 삶의 이야기로 바뀐다. 그 관점에서 소설 [천추태후]의 재미가 살아난다.

요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천추태후

천추태후에게 오랫동안 따라붙은 강한 이미지는 요부다. 김치양과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음모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소설 [천추태후]는 이 기록을 지우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만으로 천추태후라는 한 사람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소설 속 천추태후는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경종의 왕후이고 목종의 어머니이며, 김치양과 관계를 맺은 여인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뜻을 가지고 권력의 중심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개인의 사랑과 어머니로서의 마음, 왕실의 권력과 자신이 품었던 정치적 꿈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 역시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소설은 천추태후가 품었던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으려는 꿈에 주목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이 ‘천추태후, 끝없는 고구려의 혼’으로 이어지고, 에필로그가 ‘북벌, 아직 끝나지 않은 꿈’으로 끝나는 것도 이 작품이 천추태후를 바라보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녀의 모든 선택을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천추태후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역사적 평가를 반대로 뒤집는 일이 아니다. 이미 내려진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이 어떤 시대를 살았으며, 무엇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볼 때 ‘요부’라는 짧은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천추태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사서 몇 줄로는 한 사람의 삶을 모두 담을 수 없다

역사를 읽는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누가 왕이 되었고 누가 왕위에서 물러났는지, 누가 권력을 잡았으며 누가 패배했는지를 기록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아간 사람들에게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천추태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지켜야 할 아들이 있었다.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고, 그 권력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의 욕망과 이해가 부딪혔다. 그 안에서 천추태후는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꿈꾸었던 뜻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궁을 떠나야 했고, 이후의 역사에는 좋지 않은 평가가 강하게 남았다.

소설 [천추태후]도 역사의 결과에서 다시 출발해 그녀가 걸어온 길을 거꾸로 되짚어본다. 천추태후는 왜 지탄을 받으며 권력에서 밀려나야 했을까. 목종은 왜 왕위에서 내려와야 했으며, 두 사람은 왜 함께 울며 법왕사로 향했을까.

소설은 이 질문을 품고 천추태후의 탄생과 성장, 혼례와 입궁, 목종과 김치양,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죽음까지 한 사람의 일대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삶의 끝에서 다시 그녀가 품었던 꿈을 바라본다.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자 했던 꿈이다.

소설 [천추태후]가 보여주려는 것은 역사서에 남은 평가를 단순히 뒤집은 새로운 정답이라기보다, 몇 줄의 기록만으로는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한 인간의 삶이. 역사에 남은 천추태후와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간 천추태후 사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신용우 작가는 그 빈자리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놓고 소설적 상상력을 더한다. 그리하여 권력에 눈먼 여인이라는 익숙한 모습 뒤에서 왕후이자 어머니였고, 자신의 정치적 꿈을 품었던 또 다른 천추태후를 불러낸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한 사람에게 이미 내려진 평가에서 잠시 벗어나 그녀가 살았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다.

그곳에서 독자는 사랑과 아들, 권력과 꿈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추태후의 모습은 과연 그녀의 삶 전부였을까. 소설 [천추태후]는 그 질문을 품고 역사서의 짧은 글줄 뒤로 독자를 이끈다. 그곳에서 천 년 전 역사의 승패 속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삶과,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만나게 한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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