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에게 처음부터 권력이나 강한 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넓은 영토나 많은 재물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뜻을 펼칠 안정된 기반도 없었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혈통을 내세울 수는 있었지만, 현실의 유비는 멍석을 짜서 팔아야 할 만큼 쇠락한 귀족의 후손이었다.
그런 유비가 마침내 조조와 손권에 맞서는 세력을 이루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한 축이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유비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산수야 출판사의 책 [황제 유비]는 그 힘을 ‘인의’와 ‘인화’에서 찾는다. 유비는 어질고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려 했고, 힘으로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온 인재를 믿고 활용했으며,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과 배신이 끊이지 않던 난세에서 이러한 모습은 하나의 분명한 기치가 되었다. 불인불의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유비의 모습은 백성에게는 희망으로, 자신의 뜻을 펼칠 주군을 찾는 인재들에게는 그를 따를 수 있는 명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제 유비]가 보여주는 유비는 단순히 어질고 착한 군주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현실적인 힘으로 바꿀 줄 알았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능했으며,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았다.
인의를 내세우면서도 난세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 [황제 유비]는 이러한 유비의 여러 모습을 따라가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얻고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유비에게는 ‘인의’라는 힘이 있었다
유비의 삶은 출발부터 극적이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혈통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에게 권력과 군대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쇠락한 귀족의 후손이었던 그는 처음부터 천하를 다툴 만한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였다. [황제 유비]가 그 이유로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인의’다.
유비는 유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의를 자신의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웠다. 어질고 너그럽게 사람을 대했으며, 힘으로 남을 제압하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때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서를 조조의 진영으로 보내는 일도 이러한 유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붙잡아두는 것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인의의 원칙을 앞세운 것이다.
삼국시대는 강한 자들이 서로 세력을 다투고 곳곳에서 포악한 일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인의를 내세우는 유비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인상을 남겼다. 큰 뜻을 품은 선비들에게는 자신이 따를 수 있는 명분이 되었고, 난세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을 기대하게 하는 기치가 될 수 있었다.
유비는 그렇게 자신에게 없던 힘을 사람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갔다. 인의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덕목에 머물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유비가 사람을 얻고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사람을 얻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유비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사람을 얻은 뒤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중요했다. [황제 유비]는 그를 ‘인재를 사랑한 대인’이라고 표현한다.
유비는 한번 쓰기로 한 사람은 믿으려 했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자율을 주려고 했다. 사람마다 가진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도 용인술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그의 주변에 관우와 장비뿐 아니라 조운과 제갈량 같은 인물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있었다.
특히 유비는 상대의 마음을 읽고 관계를 만드는 데 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말로 조조의 신뢰를 얻고 유표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제갈량을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도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관우와 장비에게는 형제의 의리를 강조했고, 조운에게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유비에게 사람을 얻는 일은 단순히 능력 있는 인물을 찾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살피고, 그 사람이 자신의 곁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물론 사람을 믿는다고 해서 언제나 관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황제 유비]는 인의를 강조하면서도 월권에는 단호해야 한다는 그의 모습을 함께 다룬다. 사람을 믿고 능력을 펼치게 하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과 경계까지 없앨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의와 인화, 믿음과 원칙이 함께 있어야 사람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었다. 유비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없던 능력을 하나씩 채워갔고, 마침내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세력을 이루어갔다.
약한 사람으로 살아남았기에 기다리고 몸을 낮출 줄 알았다
유비의 삶에는 승리보다 실패와 위기가 더 익숙했던 시간도 많았다. 처음부터 강한 세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할 때가 있었고, 패배한 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강한 상대 앞에서는 자신의 뜻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야 했다.
[황제 유비]는 이런 유비를 ‘재능을 숨겨 치욕을 참는 지사’라고 표현한다. 유비는 자신이 약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강한 척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며 힘을 키웠고,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움직일 때를 기다렸다.
때로는 자신의 약함이나 허점을 보여주는 것조차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했다. 이런 모습은 인의를 내세우는 유비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황제 유비]는 두 모습을 서로 떼어놓지 않는다.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모습 뒤에는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황을 읽고 자신을 감출 줄 아는 정치가가 있었다.
유비는 세상 물정에도 밝았다. 사람의 심리를 살폈고, 몇 마디 말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때가 아니라면 기다렸고,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더 큰 목적을 바라보려고 했다.
실패도 그의 길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패배하면 다시 일어났고, 기반을 잃으면 다시 사람을 모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면서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그렇게 유비는 약자의 자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에게 부드러움과 인내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강한 상대들 사이에서 자신의 힘을 키워가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기도 했다.
인의를 내세운 군주에게도 정치가의 얼굴이 있었다
[황제 유비]가 흥미로운 이유는 유비의 인의를 아름다운 덕목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비는 실제로 인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인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에게 명분을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유황숙으로 내세웠고, 한나라를 다시 일으킨다는 명분을 강조했다. 유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의와 신의 역시 자신의 정치적 기치로 삼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책은 유비를 이미지 정치의 귀재라는 시선으로도 바라본다. 그렇다고 유비의 인의를 모두 거짓된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유비에게 인의라는 원칙과 현실적인 정치 감각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유비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으면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몸을 낮출 줄 알았다. 필요할 때는 자신의 약함을 보여주었으며, 상대의 심리를 읽어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도 했다.
책이 유비를 ‘타고난 불세출의 로비스트’,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파이터’, ‘자신을 숨길 줄 아는 정객’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안에는 강한 뜻이 있었고, 왕도를 내세우면서도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버리지 않았다.
인의와 정치적 계산, 관용과 엄격함, 부드러움과 강함은 서로 떨어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 여러 모습이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유비는 오랜 실패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인의와 현실 정치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만든 유비
유비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황제 유비]가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어진 군주’라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인의와 인화를 사람을 얻는 힘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얻은 인재에게는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면서 그들의 힘을 자신의 세력으로 연결했다.
동시에 현실이 인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약할 때는 몸을 낮췄고, 치욕을 참으며 때를 기다렸다. 속마음을 감추고 상대의 심리를 읽었으며, 필요할 때는 자신의 약함까지 전략으로 활용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유비는 한쪽에서는 왕도의 신봉자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현실적인 정객으로 보인다. [황제 유비]는 어느 한쪽만을 유비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유비와 인의를 정치적 힘으로 사용할 줄 알았던 유비, 사람을 믿고 아꼈던 유비와 필요할 때는 단호한 판단을 내렸던 유비를 함께 바라본다.
그렇게 여러 모습을 함께 놓고 보면 유비가 난세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만들 수 있었던 과정도 조금 더 분명해진다. 유비에게 처음부터 조조나 손권과 맞설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을 얻어야 했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인의는 유비를 다른 군웅들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기치가 되었다.
전쟁과 혼란이 이어지는 시대에 사람을 근본으로 삼겠다는 태도는 백성과 인재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비는 그 마음을 모아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고, 실패와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마침내 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한 축에 섰다.
하지만 그 길은 인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신중함, 사람의 심리를 읽는 능력과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현실적인 판단이 함께했다. 바로 이 점에서 [황제 유비]가 보여주는 유비의 모습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유비는 완벽한 도덕군주도 아니고, 인의를 겉으로만 내세운 정치가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인의를 지키면서도 냉혹한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다.
이 책이 유비의 성공을 단순히 ‘착한 사람이 사람을 얻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만들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 한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명분을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는지, 인의를 통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었는지, 얻은 인재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실패를 견디며 자신의 때를 기다렸는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비가 가진 가장 큰 힘이 무엇이었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강한 군대도 넓은 영토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 사람과 함께 자신의 힘을 만들어가는 능력이었다.
[황제 유비]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한 사람이 ‘인의’라는 기치를 들고 사람을 모으고, 현실 정치의 거센 파도를 헤쳐가면서 마침내 천하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가 만나게 되는 유비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어진 군주보다 조금 더 복잡한 사람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았고, 왕도를 말하면서도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 바로 그 두 얼굴 사이에 [황제 유비]가 들여다보려는 유비가 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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