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년, 조선의 동쪽 바다.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안용복은 다시 일본 어선들과 마주친다. 몇 해 전 일본 어민들과 충돌해 일본으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는 그에게 낯선 배들의 출현은 단순한 고기잡이 문제가 아니었다. 울릉도가 누구의 땅인지, 이 바다에서 누가 고기를 잡을 권리가 있는지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안용복은 일본 어선들을 쫓아 독도까지 나아가 영토 침입을 꾸짖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는 직함을 내세워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 조정이 보낸 관리도 아니고 군사를 거느린 장수도 아니었던 그는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일본의 관리들을 상대했다.
안용복이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평범한 백성이었던 그는 왜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길을 선택했을까.
권오단 작가의 역사소설 [안용복]은 조선 숙종 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안용복의 삶을 따라간다. 작가는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땅과 바다를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의 백성으로 바라본다.
역사에는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위험한 길을 선택했는지까지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안용복]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기록에 충분히 남지 않은 한 인간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바다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백성 안용복
안용복은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도, 이름난 장수도 아니었다. 성호사설에는 그가 동래부 수군에 예속된 전함의 노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왜관에 자주 드나들면서 일본말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살았던 조선 숙종 시대,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였지만 조정이 주민을 정착시켜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아니었다. 조선은 외딴 섬에 사람들의 왕래를 제한하는 공도정책을 시행했고, 그 사이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 주변 바다로 들어와 고기잡이를 하면서 갈등이 일어났다.
조정에서 보면 울릉도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업과 직결된 문제였다. 어디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693년,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일본 어민들과 충돌했고,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일본 측에 주장하게 되었다.
안용복은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았지만, 귀국하는 길에 대마도주에게 빼앗겼다. 이후 대마도주는 오히려 조선에 울릉도에서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외교적 갈등이 이어졌다.
안용복이 처음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겪은 일은 울릉도와 그 주변 바다의 문제가 단순한 어민들 사이의 다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고기를 잡던 바다가 어느 나라의 영토에 속하는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를 누가 지켜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갔던 사람이 스스로 다시 바다를 건너다
1693년의 첫 번째 도해가 일본 어민들에게 끌려간 일이었다면, 1696년의 두 번째 도해는 안용복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었다. 첫 번째 사건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는 울릉도를 둘러싼 외교적 논의가 이어졌다. 대마도주는 울릉도에서 조선 어민의 고기잡이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했고, 조선 조정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일본도 섬에 대한 왕래를 제한하는 정책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696년 울릉도에서 다시 일본 어선들을 발견한 안용복은 영토 침입을 꾸짖고 독도까지 추격했다. 이미 일본으로 끌려가는 일을 겪었던 그에게 다시 일본인들과 맞서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품고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안용복은 자신을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고 칭했다.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관리는 아니었지만, 울릉도와 우산도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직함을 내세워 일본 측에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 한 것이다.
그가 일본말을 익혔다는 사실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식 사절이 아니었던 안용복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말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관리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그만큼 자신의 행동에 따른 위험도 직접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번 끌려갔던 바다를 다시 건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용복은 자신이 직접 겪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다시 배에 올랐다. 소설 [안용복]은 이 선택에 주목하게 한다. 나라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보상을 약속받은 것도 아닌 사람이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 안용복의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행동이 두 나라의 외교 문제로 이어지다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간 일은 개인의 용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당시 울릉도를 둘러싼 문제에는 일본 어민들의 어로 활동뿐 아니라 대마도주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도해에서 안용복이 받아온 문서를 대마도주가 빼앗은 일도 이러한 갈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마도주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 교섭에 관여하면서 울릉도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했고, 그 과정에서 양국의 갈등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나 안용복의 행동은 이 문제를 다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1696년 일본 막부는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고, 1697년에는 그 사실이 대마도를 통해 조선에 공식적으로 전달되었다. 이로써 울릉도를 둘러싼 양국의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안용복은 일본 어민들의 침입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였다. 그의 행동은 조선 조정이 울릉도 문제를 다시 확인하고 대응하는 과정과도 연결되었다. 그러나 나라의 땅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고 해서 그에게 영광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조선으로 돌아온 안용복은 나라의 허락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위기에 놓였다. 그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영의정 남구만의 도움으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행동했지만, 조정의 법과 질서는 그의 행동을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안용복의 삶을 더욱 복잡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순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안용복은 나라의 영토를 지키려는 의지와 당시 조정의 정치적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 사람이었다.
역사 기록에 남지 않은 한 사람의 삶을 소설로 되살리다
안용복에 관한 역사 자료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사건과 조선 조정의 대응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렵다.
권오단 작가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 기록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안용복의 삶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그가 겪었을 사건과 선택을 한 사람의 눈높이에서 따라가려 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을 사랑한 민초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용복을 바라보면 그의 행동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부터 위대한 영웅이었다고 생각하면 위험한 바다를 건너 일본 측에 항의한 일도 당연한 행동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생업을 이어가던 평범한 백성으로 바라보면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삶이 있었을 것이고, 위험한 일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며, 돌아온 뒤 어떤 처벌을 받을지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권오단 작가는 안용복의 역사적 행적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만 그리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땅을 지키려는 마음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큰 용기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또한 작가는 안용복이 귀국한 뒤 겪은 어두운 정치적 사건보다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의 행적에 작품의 중심을 두었다고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안용복]은 역사소설이기 전에 기록 속에 충분히 남지 못한 민초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를 지킨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
오늘날 안용복의 이름은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안용복이 살았던 시대에는 바다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고, 조선 조정의 정책과 현장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현실 사이에도 거리가 있었다. 그 속에서 안용복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의 행동은 처음부터 숭고한 사명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사람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 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면 안용복의 이야기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역사가 언제나 왕이나 장군,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만의 선택으로만 움직이지는 것은 아니.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도 중요한 사건을 만들고, 때로는 나라의 역사에 오래 남는 흔적을 남긴다. 안용복이 보여준 것은 바로 그런 민초의 힘이었다.
권오단 작가의 소설 [안용복]은 이 역사적 사건을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들려준다. 1693년 일본으로 끌려갔던 사람이 1696년에는 스스로 바다를 건넌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남겼는지를 따라가게 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갈등뿐 아니라, 그 바다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처지도 생각하게 된다. 안용복은 왕명을 받고 출정한 장수가 아니었고 나라를 대표해 파견된 외교관도 아니었다. 그는 바다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조선의 백성이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고, 그 행동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소설 [안용복]은 그런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우리가 지켜온 땅과 바다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이름난 영웅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땅을 사랑하고 지키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히 지도 위에 표시된 섬이 아니었다. 자신과 이웃이 살아가는 터전이었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야 할 삶의 공간이었다. 권오단 작가의 역사소설 [안용복]은 그 바다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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