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어느 마을에 공부를 지독하게 못하는 소년이 있었다. 서당에 다닌 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가장 먼저 배우는 ‘하늘 천(天)’ 자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글을 읽고 뜻을 익히는 동안에도 소년은 글자 앞에서 쩔쩔매기 일쑤였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소년을 볼 때마다 놀려 댔다.
“안국이는 바보래요! 글자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
소년의 이름은 김안국이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성화는 날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졌다. 안국이에게 서당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운 곳이 아니라, 어렵고 지루한 글자를 외워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이렇게 멍청이라고 놀림받던 소년이 훗날 조선에서 뛰어난 학문과 문장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안국은 대제학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고, 왕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세자이사도 지냈다.
도대체 안국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글자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던 소년이 어떻게 책을 좋아하는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산수야 출판사의 어린이책 [책벌레가 된 멍청이]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조선 시대의 학자 김안국을 주인공으로 삼아, 공부를 싫어하던 소년이 배움의 재미를 발견하고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 낸 이야기다.
공부가 싫었던 안국이에게 찾아온 변화
어린 시절의 안국이에게 공부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서당에 가면 글자를 외워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공부를 잘하기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에 주눅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작 안국이는 글을 배우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아무리 애써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공부는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들에게 놀림까지 받으면서 안국이는 더욱 자신감을 잃었고, 책을 펼치는 일도 싫어졌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아무리 외워도 기억나지 않는 내용 때문에 속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은데 자신만 뒤처진다고 느끼면 공부가 더욱 싫어지기도 한다.
안국이도 처음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펼치는 일이 부담스럽고, 글자를 익히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런 안국이에게 여러 사건이 찾아온다.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새신랑이 되는 일도 겪으며,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재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내가 된 달래와 함께 재미있는 수수께끼와 글자놀이를 경험한다.
안국이와 달래 사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가고, 글자의 모양과 뜻을 이용한 수수께끼가 펼쳐진다. 처음에는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아팠던 안국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글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글자는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된다. 안국이는 그렇게 작은 호기심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구름 셋에 용 세 마리, 글자에도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구름 셋에 용 세 마리라는 글자를 아는가?”
“밭 다섯 마지기에 새 한 마리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들으면 누구나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구름과 용이 어떻게 글자가 될 수 있을까? 밭과 새를 가지고 어떤 수수께끼를 만들 수 있을까? [책벌레가 된 멍청이]에는 이처럼 글자의 모양과 구성을 이용한 흥미로운 놀이가 등장한다. 바로 ‘파자(破字)’라고 부르는 글자놀이다.
파자는 한자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거나 서로 다른 글자의 구성 요소를 합쳐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보는 놀이를 말한다. 한자를 그저 외워야 하는 복잡한 기호로 생각하면 어렵지만, 글자의 모양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찾아보면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쉴 휴(休)’ 자는 사람을 뜻하는 ‘亻’과 나무를 뜻하는 ‘木’이 합쳐진 글자다. 사람이 나무 곁에서 쉬는 모습을 떠올리면 글자의 뜻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글자를 이루는 부분을 살펴보면 무작정 외울 때는 보이지 않던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와 그 안에 담긴 뜻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안국이에게도 글자놀이는 배움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한 글자를 익히는 일조차 힘겨웠지만, 글자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예전처럼 겁부터 내기보다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인지 궁금해한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또 다른 글자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렇게 안국이의 공부는 조금씩 달라진다. 책을 읽기 위해 글자를 배우고, 글자를 알게 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게 된다. 배움이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 파자놀이는 단순히 한자를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바라보는 안국이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 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바보 멍청이에서 장원 급제까지
공부의 재미를 발견한 안국이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글을 외우던 때와 달리, 이제는 스스로 알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궁금한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글자를 알아야 하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안국이는 책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이야기를 발견하며 점차 공부에 빠져든다.
책의 목차도 이러한 변화를 따라간다. ‘바보 멍청이 김안국’과 ‘쫓겨난 안국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새신랑’, ‘안국이의 숨은 재주’, ‘글공부’를 거쳐 ‘과거 시험’과 ‘장원 급제’로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사신과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사건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서당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던 소년이 점차 자신의 재주를 발견하고, 학문을 익혀 중요한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은 학문을 익힌 사람들이 관리가 되기 위해 치르던 중요한 시험이었다. 시험을 준비하려면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이해해야 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런 시험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 글자조차 깨치지 못했던 안국이에게 커다란 변화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시험의 결과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안국이가 겪은 변화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글자를 이해하는 천재가 된 것이 아니다. 글을 배우는 이유를 발견한 뒤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고, 궁금한 것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달라졌다. 공부가 재미있어지자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글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도 자라났다. 처음에는 어렵기만 했던 글공부가 어느새 안국이가 즐겨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단순히 나누어 생각하지 않게 한다. 지금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못하는 것은 아니며, 자신에게 맞는 배움의 방법을 찾으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조선의 학자 김안국을 만나다
[책벌레가 된 멍청이]는 조선 시대에 실제로 살았던 학자 김안국을 바탕으로 한 어린이 이야기다. 김안국은 조선 중종 때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로, 뛰어난 학문과 문장 실력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제학을 지냈으며, 왕세자에게 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치는 세자이사도 맡았다.
대제학은 조선 시대 학문과 문장을 담당하는 중요한 관청인 홍문관과 예문관 등에서 높은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자리였다. 특히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갖춘 학자가 맡는 벼슬로 여겨졌다. 어린 시절 글자를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고 소개되는 안국이가 훗날 이러한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 준다. 김안국은 학문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평생 동안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간 인물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김안국 이야기’는 동화 속 주인공을 실제 역사 인물과 연결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책에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이라는 지명과 김안국을 연결하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김안국이 말년에 살았던 곳에서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기 위해 그곳을 안국동이라고 불렀다는 전승이다. 이처럼 책은 동화 속 안국이의 성장 과정에서 출발해 실제 조선 시대 학자의 삶과 그에 얽힌 이야기까지 관심을 넓혀 준다. 동화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실제 김안국은 어떤 시대에 살았고 어떤 일을 했는지 함께 살펴본다면 역사에 대한 호기심도 더욱 커질 것이다.
공부는 언제부터 재미있어지는 것일까?
공부를 좋아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공부가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어린이도 있다. 어떤 과목은 재미있지만 다른 과목은 아무리 노력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안국이의 이야기는 그런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가 싫었던 소년의 모습을 먼저 보여 주면서, 그가 어떤 계기로 달라지게 되었는지 따라가도록 한다.
안국이에게 처음 글공부는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일이었다. 글자를 배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외우기만 해야 했으니 책을 펼치는 시간이 즐거울 리 없었다. 그러나 달래와 함께 수수께끼 같은 글자놀이를 경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어지면서 공부의 의미가 달라진다.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을 펼쳐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생기고,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호기심이 안국이를 책벌레로 변화시킨다.
어린이들이 어떤 일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그림 그리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그려 보면서 재미있어지기도 하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숫자가 놀이와 연결되면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잘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궁금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책벌레가 된 멍청이]는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을 조선 시대 소년의 성장 이야기 속에 담아낸다. 어린이들은 안국이의 엉뚱한 모습에 웃고, 달래와 함께 풀어 가는 글자 수수께끼에 호기심을 느끼며, 어느새 책을 가까이하게 된 안국이의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남는다.
서당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던 안국이도 책벌레가 되었다면, 지금은 어렵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일 가운데 나중에 좋아하게 될 일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하늘 천’ 자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했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마침내 뛰어난 학자로 성장했다. [책벌레가 된 멍청이]는 그렇게 공부가 싫었던 한 소년이 배움의 즐거움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안국이와 달래가 주고받는 재미있는 글자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이야기와 지식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궁금해질 것이다.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때로는 전혀 몰랐던 세상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발견하면서 말이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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