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고,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숭배받는다. 아폴로를 비롯한 여러 신에게도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사랑 때문에 질투하고 다투는 신도 있고, 욕망 때문에 뜻밖의 사건을 일으키는 신도 있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즐겼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어떻게 달랐으며, 아름다운 몸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축제와 연극에서는 사랑과 욕망을 어떻게 표현했으며, 사회가 허용하거나 금지한 사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성풍속사]는 이런 질문을 따라 고대 그리스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저자 한스 리히트의 시선은 신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혼과 가정에서 시작해 육체와 운동, 축제와 연극, 춤과 술, 종교와 문학을 거쳐 사랑과 성의 다양한 모습까지 살펴본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 있는 고대 문명처럼 느껴졌던 그리스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결혼하면 그리스 여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삶을 만나기 위해 책이 먼저 찾아가는 곳은 뜻밖에도 평범한 집 안이다. 당시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책에 따르면 그리스인에게 결혼은 합법적으로 대를 이어갈 자녀를 얻고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결혼한 여성에게는 집안을 관리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아내의 생활 영역은 집 안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영역에서만큼은 ‘절대군주’에 비유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여성들이 생활하는 ‘기나이코니티스’, 즉 여인의 방도 있었다. 약혼과 지참금이 오가고, 결혼식에는 여러 풍습과 축제의 노래가 뒤따랐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살아간 것은 아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성도 있었고, 결혼한 뒤에도 사람들의 욕망은 제도가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가곤 했다. 책에는 밀회와 불륜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런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그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이 언제나 똑같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간격에서 그리스인의 생활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몸은 왜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을까
집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에도 고대 그리스 미술을 떠올리면 아름답게 표현된 인간의 신체가 먼저 생각난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상에서조차 근육과 몸의 균형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성풍속사]는 그리스인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의복과 나체, 체력 단련, 목욕과 육체미를 통해 살펴본다. 남성의 나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한편 여성의 옷은 성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몸을 단련했고 아름다운 육체를 바라보며 즐겼다.
여기에서 몸은 단순히 성적인 관심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체에 대한 경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 체력을 기르는 생활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생활 속에 머물지 않고 예술과 문화로도 이어졌다.
그래서 그리스의 조각상을 다시 바라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운 몸을 돌에 새긴 사람들 뒤에는 먼저 인간의 육체를 바라보고, 가꾸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함께 즐기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축제였다.
축제가 시작되면 신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고대 그리스에는 많은 축제가 있었다. 책에는 신성한 올림피아 제전을 비롯해 여러 지역의 축제와 아프로디시아, 헤르메스 축제 등이 등장한다. 축제에는 종교와 즐거움이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신을 기리는 동시에 모여서 춤추고 술을 마시며 여러 행사를 즐겼다.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의식과 인간의 쾌락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그리스에서는 그 경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연극도 그 세계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에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비극 작가에서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희극 작가들까지 책에는 수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비극과 희극, 풍자 희곡과 팬터마임에도 사랑과 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의 작품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 직접 보고 듣고 웃고 슬퍼했던 이야기였다. 그 무대에는 사랑과 질투가 있었고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이 있었으며, 때로는 거리낌 없는 농담과 풍자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는 엄숙한 신전과 철학자의 토론 속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놀고 웃었던 자리에서도 문화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들의 사랑을 따라가면 인간의 욕망이 보인다
이제 책은 다시 신화로 돌아간다. 세상의 기원에서 헤파이스토스와 아폴로, 아르테미스와 아프로디테에 이르기까지 신들의 이야기에는 사랑과 결합, 욕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전설 속 영웅들도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과 멀리 떨어진 완전한 존재처럼만 행동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질투하며 욕망한다. 바로 그 점에서 신화는 그리스인의 생활과 만난다.
한스 리히트는 신들의 사랑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종교와 축제, 의식과 연결해 살펴본다. 이어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연애소설, 연애편지, 철학에 이르기까지 문학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도 따라간다. 신화에서 시작한 에로스가 종교를 지나 문학과 사람들의 생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인에게 사랑과 쾌락은 어느 한곳에만 머무는 주제가 아니었다. 신들의 이야기에도 있었고 인간의 일상에도 있었다. 시인은 사랑을 노래했고 철학자는 사랑에 관해 생각했다. 극장의 무대에서도 사랑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사랑은 신화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리스인이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책 내용이 2권으로 넘어가면 한스 리히트의 시선은 더욱 구체적인 성생활로 향한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서 시작해 자위 행위, 여성의 동성애, 매춘과 헤타이라이, 남성의 동성애 등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여러 성적 관계를 살펴본다.
사포의 시를 통해 여성 사이의 사랑을 들여다보고, 매춘과 헤타이라이를 다루면서 라이스와 프리네 같은 인물도 만난다. 남성 사이의 사랑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문학과 미술, 철학과 사회적 관습까지 폭넓게 오간다.
여기에는 오늘날에도 익숙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현대 독자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풍습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풍습이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것을 오늘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한스 리히트가 살펴보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욕망을 인정하거나 비난했으며, 그것을 문학과 예술 속에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특히 헤타이라이를 비롯한 매춘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보여준다.
책은 매음굴과 매춘부의 생활, 사회적 지위와 사원 매춘까지 여러 모습을 살펴본다. 어떤 여성들은 단순히 관능적인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지적인 교류의 상대가 되기도 했다. 사랑과 성을 둘러싼 고대 그리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쾌락을 따라가자 문명의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책의 후반부에는 더욱 낯선 성풍속도 등장한다.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과 쾌감, 당시 사용되던 최음제, 외설의 개념과 여러 성적 행위까지 한스 리히트가 다루는 범위는 넓다. 현대 독자에게 불편하거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사례만을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두 권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야기는 결혼과 가정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나아가 축제와 연극을 거쳤고, 신화와 종교, 문학을 지나 사랑과 성의 여러 모습에 도착했다.
그 길에서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삶이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꼈는지, 사랑과 욕망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가 생활과 예술, 종교와 문학 속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저자 한스 리히트는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고대 그리스 문명과 일상생활을 연구했다. 특히 문학과 역사, 예술 자료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쾌락과 문명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성풍속사]를 읽는 일은 신들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신화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평범한 집 안으로 들어가 결혼한 여인을 만나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몸을 바라본다. 축제와 극장을 지나 시인과 철학자를 만나고, 다시 사람들이 사랑하고 욕망했던 생활의 자리로 들어간다.
그렇게 책장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신전을 세우고 철학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었던 사람들도 결국 사랑하고 웃고 즐기며 살아갔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그토록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욕망했던 까닭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신들의 사랑을 따라 시작한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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