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고 싶어도 마음대로 건널 수 없는 섬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제주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섬이었지만 당시 제주 사람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태풍과 해일의 피해가 잦았고, 말과 귤, 녹미와 전복 등 감당해야 할 공납도 무거웠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육지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 백성이 섬 밖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는 출륙금지령까지 시행되었다.
특히 여성에게 바다는 더욱 높은 벽이었다. 그 섬에서 1739년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김만덕. 양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친척집에서 어렵게 생활하다가 나이 든 기녀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결국 관기가 되었다.
탐라민으로 태어난 것, 기생이 된 것, 그리고 여자라는 것.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세 겹의 굴레가 만덕의 삶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미 작가의 역사소설 [김만덕]에서 만나는 만덕은 그 굴레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누이도, 누구의 여인도 아닌 그저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사는 것. 김만덕으로 사는 것이었다.
기생 만덕은 왜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려 했을까
어린 만덕에게 세상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해버렸다. 부모를 잃었고, 의지할 곳을 찾아 기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관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만덕은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주목사에게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고 양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기를 청한다. 소설의 목차에는 이 과정이 짧지만 인상적인 말로 표현되어 있다.
‘이름을 되찾다.’
김만덕에게 그것은 단순히 신분 하나를 바꾸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김영미 작가는 역사에 짧게 남은 김만덕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그 선택 앞에 서 있었을 한 인간을 소설 속으로 불러낸다. 앞으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이름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관기 만덕에서 김만덕으로.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에서 장사의 길을 열다
신분을 되찾았다고 해서 세상의 벽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만덕은 여전히 제주에 사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장사였다. 객주를 차린 만덕은 제주의 귤과 미역, 말총, 양태 같은 특산물을 육지에 내다 팔고, 육지의 옷감과 장신구, 화장품 등을 들여와 판매했다. 장사를 통해 재산도 모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녀 김만덕’ 이전의 모습이 나타난다. 상인 김만덕이다. 오늘날 김만덕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굶주린 사람들을 구한 선행이지만, 그 선행을 가능하게 만든 재산은 스스로 장사하며 일군 것이었다.
관기의 신분에서 벗어난 한 여성이 객주를 운영하고 마침내 큰 재산을 모으는 상인이 된다. 그 자체로도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김만덕의 이야기가 더욱 특별해지는 순간은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모은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서 찾아온다.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사람을 살리다
1793년 제주에 큰 흉년이 닥쳤다. 굶주림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제주 세 고을에서만 600여 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때 김만덕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다. 그는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500여 석의 쌀을 사들였고, 그 가운데 450여 석을 구호 식량으로 내놓아 굶주린 제주 백성을 구제했다.
그 재산이 어떤 돈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김만덕의 선택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넉넉한 재산이 아니었다. 관기의 신분에서 벗어난 뒤 장사를 시작하고, 오랜 시간 자신의 힘으로 모은 돈이었다. 가난과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돈이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기 위해 모은 재산이었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하자 그 돈을 내놓았다. 김만덕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상도’라는 말을 빼놓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김만덕은 두 질문에 자신의 삶으로 답했다. 거상이 된 것만으로 그의 이야기가 끝났다면 김만덕은 성공한 상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했다. 상인 김만덕이 ‘의녀 김만덕’으로 불리게 되는 순간이다.
정조가 소원을 묻자 만덕은 무엇을 원했을까
굶주린 제주 백성을 구한 김만덕의 이야기는 마침내 임금에게까지 전해졌다. 정조는 그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제주목사를 통해 만덕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평생 장사를 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큰 상을 바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재산을 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만덕의 소원은 뜻밖이었다. 한양에 가서 궁궐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금강산을 보고 싶었다. 이 소원은 김만덕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떠올릴 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아왔고 그의 발은 탐라 땅에 묶여 있었지만 눈은 조선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정조는 김만덕의 소원을 허락했다. 제주도민이 관의 허락 없이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 규칙을 넘어 만덕이 육지로 나갈 수 있도록 했고, 내의원 의녀반수라는 벼슬도 내렸다. 평생 바다 건너의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이 마침내 섬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던 아이가 관기가 되고, 다시 자신의 신분을 되찾아 상인이 되었다. 장사를 통해 큰 재산을 모았고 그 재산으로 사람들을 살렸다. 그리고 이제 바다를 건넌다. 김만덕의 삶에서 이 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역사에 남은 몇 줄에서 한 사람의 삶을 만나다
김만덕의 이름은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남아 있다. 정조실록에는 제주 기생 만덕이 장사로 모은 재물을 풀어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구제했고, 임금이 상을 내리려 하자 한양에 올라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역사가 남긴 문장은 길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는 그 몇 줄보다 훨씬 길다. 그 기록과 기록 사이에는 부모를 잃은 어린 만덕이 있다. 관기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싶어 했던 젊은 만덕이 있다. 객주를 열고 장사를 시작했던 상인 만덕이 있고, 굶주린 사람들을 바라보다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은 만덕도 있다.
김영미 작가의 [김만덕]은 그 짧은 기록 사이를 소설의 이야기로 채워간다. 그래서 소설 속 김만덕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완성된 위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놓인 벽과 하나씩 부딪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거상이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의녀였던 것도 아니다.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으며, 장사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얻은 것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했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김만덕의 선행은 더욱 특별하다.
누구의 딸인가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신분이 정해준 자리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으려 했던 사람. 돈을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돈이 가장 필요한 순간을 알았던 사람. 그렇게 김만덕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았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김만덕.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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